차라리 소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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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3회 작성일 26-04-28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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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소주 한 잔(?)
오래전 ‘좋은 생각’이라는 책을 읽던 가운데 고개를 끄덕였던 적이 있습니다. 사연을 쓴 작가가 하루는 늦은 밤 집 근처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을 찾아 잠시 동안 벤치에 않아있었는데 옆에서 들려오던 중년 남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집 없이 떠돌아다니며 빈병을 수거하면서 근근이 하루를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얼마 되지 않는 돈을 훔쳐서 도망치다가 잡혀버린 것입니다. 돈을 잃어버릴 뻔 한 아저씨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우리 둘 다 외로운데 서로가 아니면 누구에게 의지하겠나? 이번 일은 없었던 일로 할테니 맘 쓰지 말게나. 이 컵라면 자네랑 나랑 똑 같이 나눠 먹새. 국물도 똑같이 나누고 여기 한 개피 밖에 없는 담배도 나눠 피세나.....” 대화를 들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합니다. 서로의 잘못을 비방하고 이용하고 원수로 여기는 세상속에서 서로의 잘못을 품고 용서하고 용납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는 원수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기 힘든 존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오히려 기도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리의 본성을 거부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고 축복하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마 5:4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아들은 아버지를 닮습니다. 설령 겉모습이 다르다 할지라도 적어도 DNA는 거의 일치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원수조차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가룟 유다의 발을 씻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세상과 차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 5:46-4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사랑할 만한 사람만 사랑하고 원수를 멀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보다 조금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리보다 조금 더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젠가 전도를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목사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사랑사랑사랑 타령하지만 알고 보니 사랑이 가장 없는 곳이 교회인 것 같습니다. 들려오는 이야기는 매일같이 다투고 갈등하는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혹시 이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요? 세상 사람들은 소주 한 잔에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한다고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차라리 소주 한 잔 들이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목양실에서 김목사






